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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der Scrolls III: Morrowind

The Elder Scrolls III: Morrowind
2022년 4월 29일

모로윈드 제작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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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lder Scrolls III: Morrowind

Bethesda Game Studios에서 The Elder Scrolls III: Morrowind(이하 모로윈드)를 공개한 2002년 5월 1일은 비디오 게임의 역사가 새롭게 쓰인 날입니다.

롤플레잉 장르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며 수많은 콘솔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장을 열어 준 모로윈드는 한편으론 개발사의 명운을 건 승부처였죠. 모로윈드는 미지를 개척하는 도전이었습니다. 당시 플레이어들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살아 숨 쉬는 가상 세계를 창조하고자 기술력과 스토리텔링을 전면에 내세운 이 게임은 오늘날에도 다시 한번 방문하고픈 세계로 남아있죠.

2022년 5월 1일을 맞아 모로윈드의 출시 20주년을 기념하면서 모로윈드가 The Elder Scrolls 시리즈의 앞길을 열어주었는지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이 고전 RPG에 기울인 노력, 이 작품이 그토록 특별한 프로젝트로 남게 된 이유에 대해 개발자들로부터 직접 들어보세요.

시리즈의 확립

당시 Bethesda Softworks는 규모가 훨씬 작은 회사였습니다. 이때 피트 하인즈는 정말 많은 직책을 담당했는데, 그러한 경험이 지금 글로벌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부문의 부사장직에 오르는 토대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프리뷰 빌드 보안 때문에 기자들에게 서명한 기밀유지 협약서와 신분증을 팩스(??)로 보내라고 요청하는 일에서 공략집 작성을 주도했던 일까지 맡아서 진행했는데, 특히 공략집 작성에 대해서는 "죽을 뻔했다"고 회상하더군요. The Elder Scrolls가 유명해지기 전, 팩스라는 고대의 유물이 사용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게 참 놀라우면서도 겸손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모로윈드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게임이었어요. 훌륭한 게임 배경과 지리적 색채를 선보였고, RPG 장르가 콘솔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죠. 그런데 모로윈드의 수준을 더욱 높이고 The Elder Scrolls 시리즈가 새로운 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개발진이 게임 제작 툴을 공개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피트 하인즈는 얘기합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이미 훌륭했지만, 모딩 및 게임 개선 지원 기능은 플레이어들의 자기표현이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포용하는 단계를 넘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죠. "모딩은 RPG 게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어요. 이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에게도 RPG 장르에 입문하도록 문을 열어주었죠. 오블리비언이 뛰어 들어간 그 문, 스카이림이 뜯어버린 그 문은 애초에 모로윈드가 연 문이에요."라고 피트 하인즈는 덧붙입니다.

모로윈드의 흥행을 뒤에서 지도

현재 Bethesda Softworks의 수석 마케팅 아트 디렉터인 마이클 바그너는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상합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로윈드의 지도를 그리는 일을 맡았어요. 그때는 게임 세계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자동화된 수단이 없어서, TES 건축 세트(Construction set)를 불러와 구역별로 살피며 제도용 펜으로 종이에 직접 지도를 그려야만 했죠."

"Bethesda 면접날에 지금 개발 부문 수석 부사장을 맡고 있는 토드 본이 게임의 초기 버전을 보여줬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모로윈드는 Bethesda를 구했고, 덕분에 저희가 훗날 멋진 게임들을 많이 만들며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어요."

"Xbox 버전 출시 후 얼마 되지 않았는데 Xbox 유저들이 하나같이 이 게임 이야기만 하더군요. 사람들이 정말 놀라워하는 거 같았어요. 당시에는 마냥 신이 났죠. 모로윈드가 고전으로 기억되며 게임계의 미래를 뒤흔들어 놓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참 기쁘게도 바그너는 여전히 Bethesda에서 아트 작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제도용 펜은 사용하지 않고 있겠지만요. "어쨌든 일은 잘 풀렸다고 봐야죠. 그때 지도 아트 작업은 계속 기억이 날 거 같아요."라고 바그너는 덧붙입니다.

한계를 테스트하다

"저는 그때 모로윈드의 QA를 진행하는 외주회사에서 QA 팀장이었어요. 10명으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 두 가지 플랫폼에서 이 방대한 게임을 테스트했죠. 가족 게임을 주로 테스트했던 터라 새로운 게임을 테스트할 기회에 모두 들떠 있었어요. 변화가 반갑기도 했지만, 게임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라며 현재 Bethesda Softworks의 QA 디렉터를 맡고 있는 롭 그레이는 당시를 회상합니다.

게임을 테스트하다 보면 한계를 찾기 위해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로윈드도 예외는 아니었죠. 롭 그레이는 다음과 같이 그때를 설명합니다. "한정된 인원의 팀으로 극한 상황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했어요. 한번은 테스터가 광역 마법을 만들었는데, 크기가 마을만 했죠. 근데 대미지가 1이었어요. 그 마법을 발모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시전하니까 마을의 NPC가 전부 테스터 캐릭터를 바라보더군요. 그다음은 완전 아수라장이었어요. NPC가 사방에서 공격했고, 콘솔이든 PC든 정말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죠."

극한의 테스트는 QA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모로윈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낱낱이 드러내 주기도 했습니다. 라고 롭 그레이는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이 게임이 선사한 자유를 맛보고 다시금 RPG 장르를 사랑하게 됐어요. 친숙하게 느껴지는 데도, 풍경은 무척 생경하고 이야기는 더없이 심오하며(이해는 되지만) 퀘스트는 아주 독특하죠."

"커리어의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이 게임은 제가 회사에 합류하게 된 궁극적인 계기가 되어주었어요. 당시 QA 매니저가 최초의 Bethesda 자체 QA 팀을 꾸리며 저를 채용했거든요. 그때부터 죽 여기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이 게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어 정말 큰 자부심을 느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늘 이야기하며 살 거 같아요."

모드 제작자에서 게임 개발자로

Bethesda Games Studios에서 현재 수석 프래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마이크 리파리는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모로윈드는 제가 처음으로 진행한 게임 프로그래밍 작업이었어요. 아레나와 데거폴을 플레이해 봤었는데, The Elder Scrolls 시리즈의 방대하면서도 유연한 세계가 무척 마음에 들었죠. 심지어 데거폴에서 유저들을 실제로 감옥에 가두고 탈출시킬 수 있는 감옥을 구현할 수 있도록 3DS MAX 같은 플러그인 시스템의 사용을 건의한 적도 있어요."

"근데 이후 꿈 같은 일이 계속 벌어졌고, 결국엔 모로윈드의 주니어 개발자로 채용되어 The Elder Scrolls 건축 세트(Construction Set)의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저를 비롯한 모드 제작자들의 꿈을 현실로 구현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된 거죠."

물론 당시의 모로윈드처럼 야심 찬 프로젝트에는 몇 가지 성장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Bethesda Game Studios는 미래의 프로젝트를 위한 성장 과정에서 늘 이런 문제에 겪곤 했죠.

"모로윈드의 경우, 대부분의 형식에 ID 번호가 부여되지 않았어요. 외부 세계의 셀이나 공간은 그냥 그 이름이나 에디터 ID를 식별자로 사용했죠. 근데 이후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보니 문자 생성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어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 허구의 도시 이름인 Seyda Neen이 프랑스어 버전에서 Sehda Nihn으로 번역되어 있었죠. 문제를 수정하는 동안 욕설이 난무하면서 난리도 아니었어요."라고 마이크 리파리는 얘기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겪은 후 변화가 생겼습니다. 리파리에 따르면 오블리비언은 갑자기 숫자 ID를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중점을 두며, 단순히 소속되는 세계를 넘어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세계를 제공한 것이 플레이어들에게 크게 히트를 친다는 것이 검증되었죠.

"레벨 1이라도 유리 갑옷을 가질 수 있어요. 의지를 가지고 찾아서 인내심을 가지고 훔치기만 하면 되죠. 차단벽은 부유 마법으로 날아서, 아니면 이카리안 비행으로 뛰어서 넘을 수 있어요. 물론 착지를 위해 주문서가 꼭 필요하지만요. 예언의 연결고리를 끊을 용기만 있다면, 메인 퀘스트에 필수적인 NPC도 마음대로 죽일 수 있어요. 그리고 초강력 수제 포션 한 무더기만 있으면, 메인 퀘스트에 필요한 아이템들 없이도 주요 악당에게 이길 수 있고요.

여타 게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의 자유도죠. 클리프 레이서와 한두 번쯤, 그렇게 백 번 싸워볼 가치가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라고 마이크 리파리는 설명합니다.

모로윈드의 목소리

모로윈드의 보에시아와 말라카스, 몰라그 발 등의 목소리를 연기했으며, The Elder Scrolls 커뮤니티에서 광기 어린 데이드릭의 왕자 쉐오고라스의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웨스 존슨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로윈드의 배역을 처음 맡았을 때는 몇 편의 애니메이션과 단 한 편의 게임 작업만 경험한 상태였어요. 그마저도 200명이 넘는 캐릭터가 고통스럽고 요란하게 죽어 가는 걸 연기했을 뿐이었죠. 네 시간 동안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고 꺽꺽 죽어 가는 신음을 토해냈던 경험밖에 없는 저는 모로윈드라는 방대한 세계에서 연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그렇게 토드 하워드의 감독을 받아 녹음을 진행했는데, 진정한 충격은 게임이 출시되고 나서야 다가오더군요. 모로윈드를 플레이해보니 일종의 계시처럼 느껴졌어요. 애니메이션은 결과물을 봤을 때 그냥 일반적인 느낌이었는데, 이 게임은 몰입감이 너무 대단한 나머지 플레이하고 나면 꿈에 나올 지경이었죠. NPC와 플레이어 캐릭터가 소통하는 모습이 어찌나 친밀하던지 존경심마저 들었어요. 그렇게 모로윈드의 세상은 제 마음과 상상 속에서 살아 숨 쉬었고, 저는 모로윈드를 플레이하며 얻은 묵직한 경험을 다음 프로젝트인 오블리비언으로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었죠. 오블리비언의 캐릭터를 열연하는 동안 저는 모로윈드에 쏟아 왔던 800여 시간에 깊이 몰입된 상태였어요. 그 세계가 제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던 것이죠. 전 모로윈드에서 얻은 경험이 비디오 게임 녹음 작업에 큰 도움을 줬다고 믿어요."라고 웨스 존슨은 덧붙입니다.

Bethesda Game Studios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라는 주제와 관련해, 웨스 존슨은 어떻게 하나의 목소리가 그 세계의 현실성을 넘어 개인의 캐릭터 해석에도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신음 소리를 녹음할 때 브레튼 종족은 브로드소드에 공격을 당하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물어봤어요. 그때 듣기로는 마법사이고 꽤나 연약하기 때문에 딱 거기에 맞게 반응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이 두들겨 맞거나 칼에 찔렸을 때 어지간하면 보일 법한 반응으로 연기했어요. 높은 톤으로 울부짖었죠. 그런데 일부 플레이어들은 이걸 싫어하더라고요. 자신들의 마법사는 거칠고 강인하기 때문에 칼을 맞아도 침착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물론, 바로 이러한 점이 모로윈드와 The Elder Scrolls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죠. 꼭 내 자신이 될 필요가 없어요. 원하면 누구든 될 수 있죠. 모로윈드의 오픈 월드에서는 진짜 영웅처럼 모험을 즐기며 살 수 있었어요. The Elder Scrolls는 플레이어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해주는 힘이 있죠. 방심하면 빵을 도둑맞는 세상 말이에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모로윈드를 만든 사람들만 모로윈드의 세계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바덴펠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플레이어들도 들려주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로윈드에 관한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읽어 보세요. 이번에는 비디오 게임 속에서 일하러 가는 팬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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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er Wilhelm

Content Manager